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ummary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1

결함이 있는 아이들로만 구성된 차별없는 유토피아인 지구 밖 ‘마을'에서는 매년 마을 밖으로 순례자들을 보낸다. 바로 지구. 지구는 인간배아 디자인으로 인해 개조인과 비개조인 사이에 위계서열이 심해진 디스토피아다. 그럼에도 순례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렸기 때문. 이 모든 걸 밝혀낸 데이지도 마을을 떠난다.

스펙트럼2

주인공 희진은 여성 생물학자이다.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된 40여 년 동안 그는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외계 지성 생명체와 조우한다. 그곳에서 만난 루이와 소통하지 못하지만 우정을 나눈다. 루이가 기록한 것들을 가지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 후 그들의 색채언어를 희진은 한평생 연구한다.

공생가설3

어느날, 예술가 류드밀라가 그린 행성과 일치하는 행성이 관측된다. 뇌 해석 연구소의 수빈과 한나는 뉴런 활성화 패턴을 분석하는 이미징 기술을 통해 ‘사고언어'를 분석하면서 신생아의 뇌 속에 그 행성에서 왔다고 추정되는 외계 생명체들이 물리적 형태없이 공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들은 사랑, 윤리, 이타심과 같은 가치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4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에 가기 위해 인체를 냉동 수면하는 딥프리징 기술을 이용해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170세 노인 안나. 남편과 아이를 먼저 그곳으로 떠나보내 그리움으로 찬 100년을 보낸 그는, 우주정류장마저 문을 닫으려하자 절대 슬렌포니아에 도달하지 못할 구식 셔틀을 타고 떠나버린다.

감정의 물성5

잡지 기자인 정하는 행복, 침착, 공포, 우울과 같은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인 ‘감정의 물성'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사과학이나 상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의심하는데, 그의 연인 보현은 우울체 제품에 빠진다.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보현과 다투게 되고, 정하는 그가 떠난 자리에서 감각을 느끼려 해본다.

관내분실6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보관하는 도서관. 마인드와 접속하면 망자의 영혼과 조우할 수 있다.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던 그는 점차 몰랐던 엄마의 삶에 대해 알게된다.

나의 우주 영웅에 대하여7

여성 과학자 재경. 출산을 겪은 48세의 동양인 비혼모로서 우주비행사에 선발된 그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던 재경은, 신체개조 장기프로젝트로 다져진 사이보그의 몸으로 우주 대신 깊은 바다로 떠난다. 시간이 지나, 그 사실이 밝혀지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더해져 재경에 대한 비판은 심해져간다. 그러나 다음 세대인 가윤은 부담을 이겨내고 터널 너머의 우주를 목격한다.

소설가 김초엽

1993년생.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초엽의 소설은 기술로 인한 세계의 변화, 그 안에서의 타자와 소수자 문제, 나아가 개인의 변화하는 감각을 아우르는 소설이다. 김초엽의 소설은 기술로 인한 세계의 변화, 그 안에서의 타자와 소수자 문제, 나아가 개인의 변화하는 감각을 아우르는 소설이다.

변화하는 미래의 ‘소외와 결핍’

인간배아 디자인1 , 외계 지성 생명체2 , 사고언어를 분석하는 ‘이미징 기술’3 ,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한 워프 항법4 , 웜홀 통로4 , 감정의 조형화5 , 죽은 이의 생애정보를 데이터화 한 ‘마인드’6 , 신체개조 사이보그7 . 새로운 기술로 변화한 세계에도 여전히 소외와 결핍은 존재한다.

인간배아 디자인으로 개조되었지만 오류로 결함이 생겨버린 ‘마을’의 아이들과 지구라는 디스토피아 속 비개조인1 ,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단절되고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과 떨어져 살았던 지민의 엄마6 , 동양인 비혼모 우주비행사 재경7 모두 소수자이다.

외계 지성 생명체 루이2 는 소통 불가능한 타자, 신생아들의 뇌 속 류드밀라 행성으로부터 온 형체가 없는 외계 생명체3 는 인간에게 이타심, 사랑 같은 것들을 가르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강지희 문학평론가

“세계가 깜박할 만큼 작고 사소한 존재에게 온 우주의 무게를 실어
그 존재 증명을 해내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걸
김초엽은 이번에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해의 ‘순간’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특히 그 이해에서 더 많이 밀려난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교차점이나 작은 접촉면 같은 것들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는 그 점이나 면들이 정말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아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인데, 그래도 SF는 그 순간을 좀 더 극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자,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여정의 끝은 늘 이해의 순간이다. 순례자-데이지1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 루이-희진2 (루이의 색채언어), 보현-정하5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자 하는 까닭), 죽은 엄마-지민6 (디자이너로서의 경력단절과 산후우울증으로 세계와 벽을 쌓았던 엄마), 재경-가윤7 (우주 저편이 아닌 깊은 바다로 들어간 재경의 선택)

순례자­⸻데이지1

루이⸻희진2

보현⸻정하5

죽은엄마⸻지민6

재경⸻가윤7

경이감 - 김초엽이 생각하는 SF문학의 주요 판단 기준

경이감은 “우주를 생각할 때, 광대한 우주에서 작은 존재란 걸 깨달았을 때의 경이감, 45억년 지구 역사에서 찰나의 시간에 내가 있구나, 라는 생각.”

“인간의 내면을 심도있게 탐구해서 그 복잡성과 다면성을 드러내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지만, 인간을 우주에서 조망함으로써 한낱
우주먼지에 불과한 우리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문학을 보면 인물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잘 드러낸 작품들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그에 지쳐있는 국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김초엽의 소설은 조금 다른, 더 넓은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지구 밖 ‘마을’1 , 태양계 밖의 행성2 , 류드밀라 행성3 , 우주정류장4 , 터널 너머의 우주7 . 우주라는 더 넓은 공간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아 인간 내면의 더 넓은 세계를 다룬다.

물성과 물성에의 관심

김초엽은 포항공대에서 화학과 생화학으로 학·석사를 마쳤다. 석사 과정까지 밟을 정도로 과학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전문지식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부분이 소설에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여러가지 미래 기술에 대해 기술할 수 있다는 점과 바이오 해커 디엔(릴리 다우드나)1 , 여성 생물학자 희진2 , 뇌 해석 연구소 연구원 수빈과 한나3 ,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한 과학자 안나4 , 우주비행사 재경과 가윤7 , 주요 인물의 직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물질과 물성에 대한 관심이 제일 두드러지는 단편은 <감정의 물성>5 이다. 이모셔널 솔리드에서 출시한 감정의 물성은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이다.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물질의 결합에서, 물질과 물성에의 관심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소설가의 자세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엿볼 수 있다.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상상

관내분실6 의 육체 없는 정신으로서의 잔여 인간, 그리고 그와의 소통은 마치 우리가 모르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또 그 세계와 소통한다는 아름다운 상상도 가능해지는 듯하다.

작가는 공생가설3 에서도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해 상상한다. 우리의 생각 넘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그것이 바로 류드밀라 행성의 외계 생명체3 로 구현된다. 인간에게 사랑, 윤리, 이타심을 가르치는 존재로. 공생가설의 세계에서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외계 생명체가 사람의 본성을 결정시킨다는 ‘과학적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소설가 김초엽의 ‘골방’

제가 글을 쓸 때 보이는 풍경은 ‘골방’과는 거리가 멀어요. 소설을 쓰는 동안은 그 소설 속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라고 생각합니다. 쓰는 소설의 토대가 어느 정도 잡히면 그때부터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 세계에 몰입해있어요. 외계행성이나 지하 도시, 우주정거장, 그리고 요즘은 온실을 배경으로 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 가상의 세계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머릿속의 풍경들을 그대로 글로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죠.

“그래서 소설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정말로 한 번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드는데, 그게 가상세계의 이야기를 쓰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는 순간,
김초엽은 가상세계의 여행자가 된다.